2009년 01월 21일
그
그를 마지막으로 만난게 아마도 몇해전의 겨울이다. 추적추적 겨울비가 내려서 특히 추운 날이었는데, 그에게서 연락을 받고는 집을 나서 찾아갔을때는 방수도 되지 않는 점퍼를 입은 채, 비를 하염없이 맞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혀를 차며 그의 앞으로 가서는 우산을 들이 밀었다.
"--감기 걸린다"
흠칫. 하고 떨며 내 얼굴을 바라보는데, 그 눈빛이 참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상처 받은 듯, 받지 않은 듯. 고뇌하는 듯 하지 않는 듯. 미묘한 눈빛이었다. 계속 내 얼굴을 바라만 보다가, 입으로만 씨익 웃는다. 나도 웃어야 하나 하고 고민하는 사이에 그 웃음은 금새 사라지고 그가 입을 열었다.
"거.. 커피나 한잔 사주시우."
헛웃음만 나온다. 비를 있는대로 맞으면서 전화를 걸어 나오라더니, 술도 밥도 아니고 커피? 그래도 뭔가 사연이 있겠거니 하고 웃음을 지우고, 뒷통수를 한대 후려갈기며 '가자'하고는 눈앞에 보이는 커피숍으로 먼저 걸어갔다. 뒤에서 쭈뼛거리며 졸졸 따라올 꼬락서니를 생각하니, 한심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항상 웃으며 돌아다녀도, 눈의 한구석에는 늘 뭔가가 찜찜하게 걸려있는 듯한 그런 녀석이었기에 더 안쓰럽게 느껴지는 듯 하다. 몇분여를 걸어서 커피숍에 도착하고서야 뒤돌아 보았다. 역시 내가 생각한 꼬락서니다. 왠지 모르게 화가 치밀어 욕지거리를 해주며, 들어가자고 외친다. 힐끔 나를 보고는 또 다시 씨익하고 웃어댄다. 속도 없는 놈. 들어가서 대충 같은걸로 두잔을 시키고는 뒤를 돌아보자, 녀석이 보이질 않는다. 잠시 두리번 두리번 거려보니 떡하니 흡연석의 구석 한자리를 차지하고는 비에 젖어서 제대로 불도 붙지 않은 담배를 물고는 떨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니 계면쩍게 머리를 긁어대고 있다. '저녀석은 반응이 저따구것들 밖에 없나..' 하고는 곧 나온 커피 두잔을 들고는 녀석에게로 향했다. 커피를 탁자위에 턱하니 놓고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어 앞에 던졌다. 한대 피겠다는 허락도 구하지 않고는 입에 물고있던 젖은 담배를 버리고는 꺼내어 다시 물고 불을 붙인다. 한숨을 쉬며 앞에 앉고는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게냐"
"뭐-- 별일 아니우. 그냥 형님 얼굴이나 볼까하고 뭐 그냥.."
늘 말할때 말꼬리를 흐리는 버릇이 있는 녀석이었지. 하고 생각하며, 피식하고 웃어줬다. 그러자 처음 봤을때처럼 입만 씨익 웃는다. 원래 이렇게 웃는 녀석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씁쓸한 웃음으로밖에 보이지 않기에 담배를 물고는 슬쩍 농을 던지듯 먼저 이야기를 시작해보았다.
"--네놈 그렇게 웃을때는 다 이유가 있는거 아니었냐. 넌 진심으로 웃을때는 눈까지 같이 웃는다. 눈은 무슨 썩은 명태 눈을 해서는 입만 움직인다고, 그게 웃음이냐. 어디 한번 이야기 해봐라. 도움은 못줘도 들어줄 순 있으니. 무슨 사채라도 얻어다 썼냐?"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댄다. 한입 가득 담배 연기를 들이 마시더니 한숨과 함께 뱉어내고는 자세를 고쳐 앉는다. 이제서야 말할 생각이 드는건가. 하고 나도 자세를 슬쩍 고쳐 앉았다. 아무말 없이 바라보고 있자니, 녀석은 허공만을 멍하니 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마도 어떻게..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볼까.. 하고 정리하고 있을터이다. 하고있는 꼴을 보니 이곳에서 나가면 소주라도 한잔 사줘야 할거 같은 분위기라 슬쩍 시계를 쳐다보고는 커피를 한모금 두모금 마셔대었다. 그렇게 몇분이 지나고는 녀석이 입을 열었다.
그렇게 녀석은 사랑이랄지 짝사랑이랄지 그냥 열병이랄지.. 정리하기도 애매한 그런 이야기를 꺼내어 놓기 시작했다.
# by | 2009/01/21 01:38 | 끄적끄적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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